지역별 뉴스를 확인하세요.

많이 본 뉴스

광고닫기

[문화산책] 사람은 크게 살아야 한다

“사람은 크게 살아야 한다. 그걸 잊지 마라.”   우현 고유섭 선생이 제자이자 후배인 황수영 박사에게 한 말씀이다. ‘고유섭 평전’을 읽다가 이 구절에서 오래 멈춰서 많은 생각을 했다. “크게 살아야 한다”는 말씀 앞에 참 아주 부끄럽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나의 삶은 ‘크다’는 말과는 거리가 멀었다. 멀어도 한참 먼 조무래기로만 가까스로 살아왔다. 그러니 부끄럽지 않을 수가 없다.   우현 고유섭(1905-1944) 선생은 개성부립박물관 관장을 역임하며, 한국미술사의 초석을 다진 선구적 학자였다. 그것도 일제강점기라는 어려운 현실에서 “짓밟힌 민족자존을 되찾기 위해 민족미술사를 홀로 개척해나간 선구자”다.   “우현은 가장 비범했고 가장 열정적인 개척자였으며 가장 고독했던 문화독립운동가였다. 그는 민족혼을 지킨 불멸의 혼이다.” 그러니까, 고유섭 선생의 ‘큰 삶’이란 우리 민족의 자랑스러운 미술사 확립을 통해 민족적 자존심을 되찾으려는 개척자의 삶이었다.   “이대로 죽을 수는 없다. 우리 조선의 예술이 일본보다 우월하다는 걸 증명하고 가야지…. 우리에겐 독창적이며 빛나는 문화예술이 있다.” 그 독창적이며 빛나는 우리의 미술사를 바르게 정리한 책을 쓰는 것이 선생의 꿈이었다. 그 꿈을 위해, 죽는 순간까지 치열하게 글을 쓰셨다.     안타깝게도 우현은 1944년 6월에 39세라는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나는 바람에 한국미술사 집필을 완성하지 못했다. 해방을 앞두고 타계했으니, 더욱 안타깝다. 올해가 타계 80주년 되는 해다.   비록 한국미술사를 완성하지는 못했지만, 그가 남긴 학문적 업적은 실로 대단하다. 그 기초를 디딤돌로 삼아 후학들의 연구가 이어져 왔다. 그리고 ‘개성 3인방’이라고 일컬어지는 황수영, 최순우, 진홍섭 같은 훌륭한 미술사학자를 제자로 길러 한국미술사 연구의 기초를 마련한 것도 선생의 큰 업적이다.   황수영 박사는 한국 불교미술사의 최고 석학으로 동국대학교 박물관장과 총장을 역임하며 많은 학문적 업적을 남겼고, 최순우 관장은 국립박물관 관장으로 우리 문화재의 보존과 재조명에 앞장섰다. 진홍섭 박사는 국립박물관 초대 개성분관장과 이화여대 박물관장으로 많은 업적을 남겼다. 세 분 모두 우현 선생의 학문적 기초 위에서 자기 학문 세계를 펼쳐나갔다.   크게 살기 위해서는 세상을 넓게 보고, 깊게 생각하는 눈과 마음을 가져야 한다. 특히, 역사 공부에서는 긴 안목과 깊은 시각이 반드시 필요하다. 망원경과 현미경을 동시에 갖춰야 하고, 객관성과 균형을 유지해야 한다. 우현 선생 말씀대로 역사학자는 큰 사람이어야 하는 것이다.   물론, 크게 사는 것이 중요하지만, 사람 자체에 크고 작음이 있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인간 누구에게나 장점과 단점이 있게 마련이고, 그 장점과 단점을 평균하면 사람의 크기는 대개가 어슷비슷하다고 믿는다. 그러므로 아주 특별하게 타고난 사람이 아닌 다음에는 큰 차이가 없다고 믿고 싶다.   불교계에서 영향력이 막강했던 법정 스님은 ‘큰 스님’이라는 말을 들으면 늘 손사래를 치며 이렇게 말하곤 했다고 전한다. “큰 스님? 그럼 작은 스님도 있는가? 대추기경이 있고 소추기경이 있고 그런 건가?”   옳으신 말씀이다. 하지만, 우현 선생의 “크게 살아야 한다”는 말씀도 절실하다. 큰 사람이 많아야 우리 세상이 아름답고 건강해질 것이기 때문이다.   이제부터라도 조금이나마 크게 살고 싶은 마음 간절하다. 하지만, 참 어려운 일이다. 나는 더 어렵다, 워낙 키가 작아서…. 장소현 / 시인·극작가문화산책 한국미술사 집필 한국미술사 연구 우현 선생

2024-03-28

[문화산책] K-아트 국제 경쟁력의 근본

“지금 시각은 오후 1시 이쪽저쪽입니다.”   예전에 국악방송의 한 진행자가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시보를 이런 식으로 알렸다고 한다. 참 신선하고,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해준다. 그 방송을 직접 듣지는 못했고, 책에서 읽었는데도 참신한 느낌이었다.     아나운서가 아무리 정확하게 한다 해도, 알리는 순간에 시간은 흘러가기 때문에 정확한 시간을 알리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러니 이쪽저쪽이라고 말하는 것이 옳다는 이야기다.   이쪽저쪽이라는 표현 참 여유롭고 정겹다. 국악인의 표현답다. ‘이쪽저쪽’은 한국 문화의 미학적 특성을 잘 말해준다. 우리 문화 예술은 빈틈없는 정확성보다는 소박하고 느슨하지만 넉넉하고 여유로운 인간미를 본질로 한다. 어딘지 엉성해 보이는 어수룩함이 주는 멋….   한국미의 특성을 한마디로 말하기는 어렵다. 여러 선학께서 노력하셨음에도 명확하게 규정하지는 못했다.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매력이 그만큼 많다는 이야기다. 멀리서 보면 엄청나게 빛나는 아름다움이 보이는데, 막상 그 실체를 분명히 알려고 가까이 가서 보면 아무것도 없는 것 같은 묘한 매력….   한국미술을 사랑한 것으로 유명한 야나기 무네요시는 자연미, 곡선미 등에 주목하며, 한(恨)을 한국미의 뼈대로 파악했다. 한국미술사 연구의 기초를 세운 우현 고유섭 선생은 한국미의 특징을 구수한 큰 맛, 고수한 작은 맛, 무기교의 기교, 무계획의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그의 제자 최순우 선생은 익살의 아름다움, 은근의 아름다움, 순리의 아름다움, 백색의 아름다움, 추상의 아름다움에 주목했다.   새삼스레 한국적 아름다움의 빼어난 특징을 살피려 애쓰는 까닭은 한국 예술, 특히 미술의 세계무대 진출에 올바르고 효과적인 길을 찾고 싶기 때문이다. K-아트가 큰 주목을 받고 있고, 한국이 세계 미술시장의 중심지로 떠오르고 있다는데, 막상 우리가 당당하게 내보일 것이 무엇일까를 고민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언제까지 단색화를 들이댈 것인가? 이것은 미주 한인 작가들에게도 절실한 주제일 것이다. 무엇이 우리의 경쟁력일까?   내가 믿는 대답은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강력한 경쟁력이라는 것이다. 오랜 세월 면면히 이어져 내려온 한국미의 정신과 기법을 오늘의 아름다움으로 자랑스럽게 재창조하는 일, 그래서 자꾸 옛것을 되살피며 한국인의 마음을 찾아 되살리려 애쓰는 것이다.   그림의 여백이 주는 깊은 울림, 백자의 어수룩한 아름다움, 되바라지지 않고 자연스러운 멋, 선비의 품격과 여유, 소리의 엇박자, 말없이 할 말 다하는 능청, 빈틈, 파격, 익살, 숭늉 같은 구수함, 온돌의 착한 따스함, 은근과 끈기….   구체적으로 조형적 측면을 말하자면, 물론 개인적 소견이지만, 한국인 특유의 정신세계 바탕 위에 한지나 먹과 붓 등의 멋을 살린 한국적 조형언어는 우리만의 아름다움과 힘을 표현하는 강력한 수단이 될 것으로 믿는다. 수묵화나 서예의 멋, 선비정신과 풍류, 흥과 신명 같은 정서의 현대적 해석과 재창조 작업, 이응노, 김환기, 이우환, 윤형근, 이강소, 오수환, 박대성 등 여러 작가가 이미 성공적 사례를 남겼다. 이런 작업에 전념하는 젊은 작가들도 많아서 기대를 모으고 있고, 남가주의 한인 작가 중에도 기대주가 여러 명 있어서 희망적이다.   중요한 것은, 이런 작업이 갑작스레 되는 것도 아니고, 억지로 되는 것도 아니라는 점이다. 시간이 필요하고 은근과 끈기가 필요하다.     우리가 겪어온 벼락치기 현대화, 서구화의 찌꺼기가 그렇게 쉽게 벗겨지는 것이 아니니…. 장소현 / 미술평론가·시인문화산책 경쟁력 아트 한국적 아름다움 한국미술사 연구 아름다움 추상

2024-03-07

많이 본 뉴스




실시간 뉴스